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0년 프랑크푸르트 공항 사건 (문단 편집) == 결말 == 김영남 측은 9월 5일,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예약하고 9월 6일 중국으로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024834|돌아갔다.]] 한겨레신문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선을 버리지 못했다고 비난하면서도 일방적 정상회담 취소는 외교적인 관례에 어긋난다고 북한의 대응도 지나치다는 양비론을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18030.html|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항공 특별기를 타고 9월 6일, 미국에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024840|도착하였다.]] 그리고 역시나 김영남과 회담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일본의 [[모리 요시로]] 총리와 회견한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북한과 외부세계의 관계, 그중에서도 북미관계에 손상되지 않도록 할 것이며, 단순한 사건이었다고 의견일치를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025089|보았다.]] 만약 김영남이 방미했다면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최고위급 인사가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025045|되었겠지만]] 결국 이후 미국을 방문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총정치국장 [[조명록]]에게 이를 양보해야 했다. 나중에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던 북미관계는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반미 측이나 북한은 미국의 만행이라고 날뛰었으나 정작 클린턴과 올브라이트 측의 당혹스러운 반응과 적극적인 수습 노력을 보면 미국의 고의적 결례였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아메리칸 항공사 직원들의 관료주의적 병크였다고 보기에는 독일 측에서 자기들은 아메리칸 항공에게 김영남은 북한의 국가수반이라고 이미 설명했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의문이 제기되기는 한다. 이에 대해서 북미관계 개선에 불만이 있던 공화당의 사보타주라는 음모론도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37486.html|제기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